제가 거주하는 남부 지방에는 아직 단풍이 그 아름다운 색을 발하고 있습니다. 운전을 하다 길가와 먼 산의 노랗고 빨간 자태를 뽐내는 색채에 눈 호강을 하고 있지만, 이내 찬바람이 불어오면 마지막 몸부림으로 그 화려한 색채로 우리에게 기쁨을 선사하고 수려한 옷을 벗고 휴지기에 들어가겠죠.
올해 아직 단풍 구경다운 나들이를 하지 못했지만 길가에 노랗게 물들인 은행나무들을 보노라면, 몇 년 전 영주 부석사 일주문을 향하는 길가의 은행나무 숲길이 주는 황홀함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은행나무를 검색하다 보니 제가 알지 못했던 은행나무에 대한 재미있는 몇 가지가 있어 소개를 하려고 합니다. 여유가 되신다면 그 끝을 향해 달려가는 가을의 정취도 만끽하시고,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은행나무에 대한 소소한 재미도 같이 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은행나무가 멸종위기종이라고...?
은행나무가 멸종위기종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신지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은행나무를 야생에서 멸종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멸종위기종(Endangered‧EN)으로 분류했습니다. 야생 은행나무는 중국 동부 저장성과 서남부에만 소수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 외에는 자연번식이 어려워 모두 인간의 손을 거친 것들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은행나무가 멸종위기종인 이유는 야생 번식이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종자가 크고 무거운 데다 악취와 독성 때문에 동물들이 꺼립니다. 더군다나 어린 나무가 종자를 맺기까지는 30년의 긴 시간이 걸리는 이유로 개체 번식을 하려면 인간의 손이 필요합니다. 만약 지구상에서 인간이 사라진다면 멸종될 생물 1위로 꼽히기도 합니다.
어쩌면 은행나무를 식물도감이나 화석으로만 그 존재 여부를 알 수 있는 날이 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서울 세종로 가로수 길엔 은행 열매 냄새가 안 난다..?
무심코 길을 걷다 은행 열매를 밟으신 적이 있으신지요?
그 특유의 고약한 냄새로 코를 쥐기도 하고, 씨를 둘러싼 과육이 으깨진 채로 거리를 뒤덮은 모양새로 미간을 찌푸린 경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왜 은행나무 열매는 유독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걸까요?
은행 열매의 '코를 찌르는' 고약한 냄새는 겉껍질 속 점액에 있는 '비오볼'이라는 성분 때문입니다. 곤충으로부터 속살을 보호하는 물질로, 열매껍질이 찢어지면서 점액이 새어 나와 악취를 풍기는데, 이 열매는 '암나무'에서만 열립니다.
그럼, 가로수로 '다른 나무를 심거나 수나무를 심으면 되지 않냐'라고 합리적 의심을 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은행나무는 냄새가 나긴 하지만 다른 나무에 비해 가로수로서의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은행나무는 병충해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공해에 강하고 가을철에는 노랗게 잎이 물들면서 거리를 아름답게 해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가로수로 많이 선호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요즘은 DNA 판별법의 발달로 은행 묘목을 심은지 15년 정도가 지나야 암수 구별을 할 수 있던 것을 최근엔 1년생 이하의 어린 은행나무도 암수를 정확히 구별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나무는 가로수용으로, 암나무는 열매 생산용으로 구분해서 쓸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서울 세종로는 가로수 길 조성사업을 수나무만 골라서 심었는데, 가을철에도 은행 열매 냄새를 맡을 수 없다고 합니다.
은행은 익혀서, 하루 10알 미만으로
은행 열매가 몸에 좋다는 것은 다들 아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독성으로 인한 중독 사고 또한 위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옛날 '굶주린 사람들이 밥 대신 은행을 많이 먹고 다음날 모두 죽어 있었다’는 기록도 있으며, 세계 2차 대전 이후 패망한 일본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 은행을 주식으로 먹었다가 많은 중독사고가 있었다고 합니다.
은행 종자에는 시안배당체와 메칠피리독신이라는 독성물질이 함유되어 있어서 독성반응은 날로 먹으면 더욱 심하고 익혀도 독성은 줄어들지만 완벽하게 제거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성숙 종자일수록 독성이 많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식품의약품 안전처는 성인의 경우 익힌 은행을 하루 10개 이하, 어린이는 하루 3개 이하로 기준을 정하고 있습니다. 하루 10개를 넘는다고 누구에게나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중독증상은 나이가 어릴수록, 체력이 약할수록, 복용량이 많을수록 심하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은행 중독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은행은 반드시 익혀 먹어야 하고 처음 먹는 경우 소량부터 섭취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은행은 식품이자 약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독성을 띠는 두 얼굴의 가지고 있습니다.
떨어진 은행잎을 주워 책갈피로 활용하던 것은 이젠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옛 시절의 낭만이자 추억이 된 듯합니다. 가을철만 되면 노랗게 물들인 은행이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움과 여유로움을 선사함과 동시에 일상에 불편함을 가중시킨다는 불청객의 오명을 동시에 쓰고 있는 지경입니다. 열매가 떨어지는 짧은 시기 동안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멸종위기종을 우리가 보호하고 지키고 있다는 여유로운 사고를 가지는 건 어떨까요?
'일상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인의 연령대 별 삶의 만족도 2022 (31) | 2022.12.26 |
---|---|
다른나라는 크리스마스에 어떤 걸 먹지? (19) | 2022.12.19 |
올해 세계 인구 80억 명 넘길 수 있을까? (20) | 2022.10.03 |
7월 11일은 유엔 '세계 인구의 날'(feat. 대한민국 인구 소멸 위기) (27) | 2022.07.10 |
국민 MC 송해 선생님 별세(Feat.따뜻한 하루) (23) | 2022.06.09 |
댓글